AI 오면 편해진다고? 감시받고, 책임까지 떠안았다

AI가 일을 대신하면 사람은 그만큼 편해질까요, 아니면 사람에게 더 어려운 일만 남겨질까요?
- 김금영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지부장
많은 이들이 AI의 도입이 인간의 노동을 덜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8월 13일, 김용균재단이 주관한 김용균포럼 <AI가 노동현장과 노동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모인 다섯 현장의 노동자들은 정반대의 현실을 증언했다.
AI는 쉽고 정량화하기 좋은 업무만 가져갔을 뿐, 정작 까다롭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일 그리고 그에 따르는 위험과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남겨진 일들 : 단순 업무의 빈자리, 더 무거운 노동으로 채워지다
가장 먼저 토론에 나선 것은 김금영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지부장이었다.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에 24시간 AI 상담(나이스콜)이 도입된 후, 단순 조회나 반복적인 안내는 AI의 몫이 되었다. 상담 건수 자체는 줄었지만, 노동강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AI가 해결하지 못한 복잡하고 예외적인 민원, 그리고 기계와의 실랑이 끝에 잔뜩 화가 난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결국 인간 상담사였기 때문이다. 쉬운 상담이 사라진 자리에 더 어려운 상담과 더 강도높은 감정노동이 남았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보건의료와 유통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 보건의료 현장: 국제노동기구(ILO)가 조사한 한 대형병원에서는 낙상 위험 예측 AI가 쉴 새 없이 부정확한 알림을 쏟아냈고, 병원 측의 “AI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지시 탓에 간호사들의 업무는 오히려 늘어났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발표)
- 외주화된 ‘그림자 노동’: 같은 병원에서, 물류 로봇이 간호사의 재고 정리 부담을 덜어준 이른바 ‘성공 사례’ 이면에는 땡볕이 내리쬐는 외주 창고에서 하루 종일 서서 로봇의 카트를 채워야 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있었다.
- 유통 현장: AI가 현장의 미세한 변수를 잡아내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은 AI를 위한 ‘데이터를 입력하고 보정하는’ 새로운 과업을 떠안게 되었다. (정주원 이랜드노동조합 사무국장)
무늬만 AI :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 만드는 혼란
왜 기술은 광고하는 것처럼 유려하게 작동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것일까? 관련하여 전진한 정책국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무분별한 도입’이다. 한국에서 ‘신의료기술평가’를 정식으로 통과한 의료 AI는 단 한 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진입’ 규제 완화로 인해 환자들은 비급여 비용까지 지불하며 사실상 실험 대상이 되고 있다.
- 욕창 분류 앱 : 조명이 조금만 달라져도 색을 잘못 인식해 현장 사용 불가
- 당뇨망막증 진단 AI (구글) : 태국 실제 진료 환경에서 사진의 21% 판독 실패
이러한 실패 사례들은 AI가 질환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픽셀 단위의 패턴으로만 분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실험실에선 되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재현 실패인 셈이다.
토론회의 기조 발표를 맡은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이를 ‘블랙박스’ 현상으로 설명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률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AI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미국 휴스턴 교육청이 알고리즘 평가로 교사 100여 명을 해고하고서 “우리도 (왜 AI가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이유를 모른다”고 답한 사례나, 아마존의 채용 AI가 여성 지원자를 걸러낸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다.
전진한 국장은 인간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겉으로만 기술 혁신인 척하는 현상을 케이트 크로퍼드의 표현을 빌려 ‘포템킨 AI (무늬만 AI)’라 말하며, 이는 “누가 그 노동을 하고 고용은 어떻게 바뀌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은폐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는 ‘어떤 기술을 택하느냐’라는 선택으로 귀결된다. 더 나아가 전진한 국장은 정작 현장이 원하는 기술은 따로 있다고 짚었다.
실질적으로 간호사들이 원하는 기술은 아주 단순하고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 기술들이 많은데, 우리 정부가 하려고 하는 AI 전환이라든지 아니면 병원 자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병원 운영이나 노동자 통제에 유리한 방식으로 기술을 채택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의료 AI 도입이) 실질적으로는 간호사들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완화시키는 게 아니라 악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감시와 위험, 그리고 사라진 책임
설명 불가능한 기술이 현장에 예고없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은 단순히 ‘어려운 일’뿐만 아니라 감시, 위험, 책임 전가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 진화하는 감시: 콜센터 노조가 실시간 음성 감시를 중단시키자, 관리자들은 여러 상담사의 STT(음성-문자 변환) 화면을 동시에 띄워놓고 개입하는 ‘화면 감시’로 방식을 바꿨다.
-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위험: 배달 알고리즘은 자체 기준을 통해 콜을 배분한다. 같은 업무를 하고도 라이더마다 단가가 다르게 매겨지지만, 그 기준은 공개되지 않는다. 밤 9시까지 목표 건수를 채워야 하는 ‘미션’은 신호위반과 과속을 유도하며, 실제로 배달업은 2022년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산재 발생 건수 1위였다.
라이더유니온에서는 라이더 개개인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소위 ‘절박함 지수’를 계산하여 미션을 부여하는 정황을 포착하고 있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 책임의 외주화: 로봇 오작동으로 사고가 발생해도, 회사는 시스템 결함이 아닌 노동자의 과실로 몰아갈 수 있다. “잘못은 AI가 하고 책임은 사람이 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사무국장은 이 모든 문제의 기저에 ‘인력 없는 AI 만능주의’가 있다고 봤다. 공공병원 비중이 5.2%로 OECD 평균(56.5%)에 한참 못 미치는 현실에서, 정부가 정작 부족한 인력을 AI로 메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아니라 인력과 공공의료”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현장의 마음이 한 방향인 것은 아니다. 배동산 사무국장은 “‘왜 노조는 반대만 하냐’, ‘AI가 도입되면 일이 좀 쉬워지지 않겠냐’, ‘관리자보다 AI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냐’는 목소리도 현장에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런 기대가 있기에, 문제는 ‘AI를 받아들일 것이냐’가 아니라 ‘그 도입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로 넘어간다.
정해진 미래는 없다 : 통제권을 향한 질문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술의 파도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토론회에서는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의 연구를 참조했다.
ILO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일한 AI 기술이라도 노동조합이 있는 병원에서는 노동을 돕는 방향으로, 없는 병원에서는 통제와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도입되었다. AI 도입에 따른 위험이 완화된 사례의 공통점은 ‘인간의 개입’, ‘정보의 투명성’, 그리고 ‘노조의 의사결정 참여’였다.
미국 간호사 노동조합은 지난 2024년 검증되지 않은 AI에 맞서 파업을 진행하면서 아래와 같은 구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환자는 알고리즘이 아니다(Patients are NOT Algorithms).

올해 6월 채택된 ILO 플랫폼노동협약은 자동화된 시스템이 노동조건에 불리한 결정을 내렸을 때 노동자에게 서면 설명과 재검토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 ‘인간의 관여’를 포함하도록 명시했다. 2024년 합의된 EU의 AI법(AI Act)은 고위험 AI를 직장에 도입할 때 노동자 대표와의 사전 협의를 의무화하고, 기업에 기본권 영향평가를 요구한다.
국내 현장도 움직이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 대상에 알고리즘을 포함시키자고 요구하고, 이랜드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AI·로봇 도입 시 노동조합과 합의한다"는 한 줄을 넣으려 했으나 사측이 이를 거부했다.
반면 법과 제도는 노동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 시행된 한국의 인공지능 기본법은 소관 부처가 노동과는 거리가 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인 데다 내용도 부실하다는 것이 장여경 상임이사의 지적이다.
결국 남은 과제는 노사 합의 의무화, 설명요구권·이의제기권 보장, 위험한 AI의 사용 제한을 현장의 단체교섭과 입법으로 못 박는 일이다. 사회를 맡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이날의 논의를 마무리하며 다음처럼 말했다.
AI는 단일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자 이데올로기이며, 지배적인 권력 장치입니다. 기술은 새롭지만 우리의 대응 방식은 여전히 고전적입니다.
-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AI가 노동의 지형을 어떻게 바꿀지는 정해진 미래가 아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더 나은 시간’을 안길지 ‘더 무거운 짐’을 지울지는, 결국 그 방향을 누가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날 다섯 노동자가 던진 것은 바로 그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