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AI가 전쟁에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범위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AI를 군사 활동에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그 범위는 어떻게 정할지 등과 관련한 논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디프레임(deframe)은 ‘AI와 전쟁’이라는 주제로 미국 법원 소장과 의견서, 기업 공시 등의 1차 자료를 입수, 분석해 논쟁의 핵심을 추적합니다.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은 가처분소송에서 앤트로픽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트럼프의 클로드 사용 중단 지시, 헤그세스의 ‘공급망 위험’ 지정, 2차 보이콧 명령, 세 가지 모두 효력이 정지됐습니다. 판사는 미국 정부의 조치를 앤트로픽을 “처벌하기 위한 설계”로 봤지만, AI의 군사 사용에 대한 근본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43쪽 결정문을 직접 읽고 정리했습니다.

일단, 앤트로픽이 이겼다.

3월 26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리타 린(Rita Lin) 판사는 앤트로픽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43쪽짜리 결정문을 공개했다. 이번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용 중단 지시,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2차 보이콧 명령, 그리고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한 조치, 세 가지 모두의 효력이 본안 사건 판결 때까지 일단 정지됐다.

그러나 법원 결정문에는 이 ‘AI와 전쟁’ 시리즈가 주목해 온 핵심 질문, 즉 “AI의 군사 사용에 누가 선을 그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들어있지 않다. AI를 자율살상무기나 미국 내 대량감시에 사용하는 문제에 민간 기업과 정부 중 누가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결정문은 “이러한 공공 정책 문제는 본 소송에서 법원이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AI의 전쟁 사용이 안전한지, 앤트로픽의 기술적 판단이 옳은지, 국방부가 전쟁 목적으로 AI를 어디까지 활용할지 등에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국방부가 클로드 사용을 중단하고 다른 기업의 AI 모델을 사용하는 것은 국방부의 권한이고, 앤트로픽도 이에 동의한다.

판사가 판단한 것은 단 하나다. 정부의 조치가 법을 지켰느냐 여부. 그리고 결론은 “아니다”였다.

판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세 가지 조치를 취하며 “그 이상”으로 나아갔다고 봤다. ▲대통령이 모든 연방기관에 앤트로픽 사용을 영구 금지한 것, ▲국방장관이 군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에 앤트로픽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명령한 것,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한 것.

이 광범위한 조치들은 정부가 내세운 국가안보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가 클로드(Claude) 사용을 중단하면 될 일이다. 이 조치들은 앤트로픽을 처벌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오웰적”

결정문에서 가장 날카로운 표현은 ‘오웰적(Orwellian)’이었다. 이 말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따온 것으로 미 정부의 전체주의적 통제를 비판한 표현이다. 

앤트로픽은 자사 AI의 사용 제한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국방부와 수개월간 협상했다. 합의가 안 되면 떠나겠다고 제안하며 대안 업체로의 전환을 돕겠다고도 했다. 협상은 끝까지 “우호적이고 원만했다(cordial and amicable)”고 양측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논의를 뒤집었다.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한 것은 은밀한 파괴 공작의 징후가 됐고, 협상에서 입장을 고수한 것은 적대적 세력의 증거가 됐다. 정부 측 변호사는 심리에서, 앤트로픽이 자사 기술의 사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려를 표명하고”, 정부 입장을 “언론에서 비판한” 것이 ‘공급망 위험’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미국 기업이 정부에 이의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잠재적 적대자이자 파괴 공작원(saboteur)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은, 관련 법률 어디에서도 뒷받침되지 않는 오웰적(Orwellian) 발상이다.

결정문이 드러낸 새로운 사실

새로운 사실도 결정문에서 드러났다.

2026년 3월 3일,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공식 지정했다. 에밀 마이클 기술 담당 차관은 같은 날 작성한 공식 위험 평가 문서에서 앤트로픽을 “용납할 수 없는 국가안보 위협(unacceptable national security threat)”이자 “적대적 당사자(hostile party)”로 규정했다.

그런데 다음 날인 3월 4일, 앤트로픽에 통보하기도 전에 마이클은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앤트로픽이 보낸 사용 조건 수정안을 검토한 뒤, “합의가 거의 다 된 것 같다”고 했다.

판사는 이 이메일과 위험 평가 문서 사이의 모순을 지적했다. 앤트로픽을 “적대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국가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해놓고, 다음 날에는 합의가 거의 다 되었다고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국방장관이 앤트로픽을 국방생산법에 따라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존재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위협이 되면서 동시에 필수적인 존재일 수는 없다.

종합하면, 증거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정부가 제시한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판사가 인정한 네 가지

린 판사는 앤트로픽의 주장의 네 가지 근거를 모두 받아들였다.

표현의 자유 침해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정부가 누군가의 발언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보복을 하면 이 조항에 위반된다. 판사는 이 쟁점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봤다. 

앤트로픽이 자사 AI 활용 범위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미국 헌법이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근거로 삼아서 앤트로픽을 블랙리스트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결정문은 헤그세스의 X 게시물과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 게시물을 직접 인용했다. 헤그세스는 앤트로픽을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오만의 극치”라고 불렀고, 트럼프는 “급진 좌파 기업” 이라 불렀다. 판사는 이들이 앤트로픽의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발언과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을 들어 보복의 직접적 증거로 판단했다. 마이클의 위험 평가 문서도 앤트로픽의 “언론을 통한 적대적 행동(hostile manner through the press)”을 공급망 위험 지정의 이유로 꼽고 있었다.

적법절차 위반

앤트로픽은 블랙리스트에 올려지기 전 아무런 통보도, 반박 기회도 받지 못했다. 정부는 “국가안보 상황에서는 사후 절차로 충분하다”고 주장했지만, 판사는 “긴급성의 증거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국방부는 앤트로픽이 내건 사용 제한 조건을 알면서도 1년 넘게 아무 문제 없이 함께 일해왔고, 정부는 이미 앤트로픽 계약 종료를 6개월에 걸쳐 진행할 계획이었다. 사전 통보 없이 즉시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할 긴급 상황은 아니었다.

행정절차법(APA) 위반

행정절차법은 연방기관이 행정 조치를 내릴 때 법이 정한 절차를 따랐는지를 심사하는 기준이 되는 법률이다. 판사는 이 법에 근거해,  ‘공급망 위험’ 지정이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봤다.

공급망 위험 지정에는 별도의 법적 요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지정 전에 “더 가벼운 조치는 없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정부 문서에는 검토했다는 문구가 들어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을 검토했는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판사는 정부가 검토했다고 한 건 “단순한 립 서비스(mere lip service)”에 불과하다고 봤다.

또한 위험 평가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법률이 지정한 정보 담당 차관이 아니라, 앤트로픽과 직접 계약 협상을 벌인 당사자인 에밀 마이클이었다는 점도 절차 위반으로 지적됐다.

회복 불가능한 손해

결정문에 따르면, 정부 조치 이후 수일 만에 1억 8천만 달러 이상 규모의 계약 3건이 무산됐고, 100개 이상의 기업 고객이 불안을 표명했으며, 일부 고객은 클로드에서 경쟁 AI 모델로 전환했다. 앤트로픽 CFO는 2026년 매출 손실이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진술했다.

명령의 범위

가처분 명령은 세 가지 조치를 모두 정지시킨다.

트럼프의 사용 중단 지시와 관련하여, 18개 연방기관 전체가 이 명령의 대상이다. 앤트로픽이 이 기관들과 계약 관계가 있거나, 이 기관들이 이미 앤트로픽 사용을 중단했거나, 다른 기관의 앤트로픽 접근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제출됐다.

헤그세스의 공급망 위험 지정과 2차 보이콧도 정지된다. 판사는 이 명령이 위법한 조치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 명시했다.

이 명령은 원상회복이다. 피고가 2월 27일 이전에 취할 수 있었던 합법적 조치를 막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 명령은 국방부가 앤트로픽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며, 국방부가 다른 AI 업체로 전환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조치가 관련 규정, 법률, 헌법 조항에 부합해야 한다.

이것은 가처분 심리에서 앤트로픽 변호사 마이클 몬건이 주장한 것과 일치한다. “우리가 요청하는 것은 2월 27일 아침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양측의 반응

판결 직후, 에밀 마이클 기술 담당 차관은 X에 이 결정을 “치욕(disgrace)”이라고 올렸다. “전쟁 중에 48시간 만에 급히 내놓은 결정문에 수십 개의 사실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어떤 오류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마이클은 또한,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다른 법률에 근거해 내린 별도의 공급망 위험 지정은 이번 결정의 대상이 아니며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앤트로픽이 처음부터 두 곳의 법원에 소송을 낸 건 역시 이 때문이다. 헤그세스가 두 개의 다른 법률을 동원해 앤트로픽을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각각에 대응하려면 서로 다른 법원에 가야 했다. 이번 캘리포니아 결정이 정지시킨 것은 그중 하나이고, 다른 소송은 워싱턴 D.C. 항소법원에서 별도로 진행 중이다.

앤트로픽은 “법원이 신속하게 처리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본안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동의해 주신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명령은 즉시 발효되지 않는다. 판사는 정부에 7일의 시간을 줬다. 이 기간에 정부는 상급 법원(제9연방항소법원)에 ‘이 명령의 효력을 막아달라’는 긴급 신청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심리에서 이미 ‘가처분이 내려지면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정이 답하지 않은 질문

이 결정은 앤트로픽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 “AI를 자율살상무기와 미국 내 대량 감시에 써서는 안 된다”는 제한 자체에 손을 들어준 건 아니다.

판사가 보호한 것은 “이건 안 된다”라고 앤트로픽이 말할 수 있는 권리다. 앤트로픽이 내건 제한을 유지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국방부는 내일이라도 합법적 절차를 밟아 앤트로픽과의 계약을 끊고, 아무 제한 없이 AI를 쓰겠다는 업체와 계약할 수 있다. OpenAI와 xAI는 이미 그렇게 국방부와 계약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앤트로픽 길들이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AI 기업들은 이미 줄을 섰다. 구글은 2025년에 군사 사용 제한을 풀었고, OpenAI는 “모든 합법적 사용”을 수용했다. 결정문이 인용한 의견서에서 앤트로픽의 경쟁 AI 기업 직원들조차 미국 정부의 조치가 “AI 안전에 대한 공적 토론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증언했다.

AI의 군사 사용에 선을 긋는 국제 협약은 아직 없다. 미국 국내법에도 그런 규칙은 없다. 이번 가처분 결정 역시 그 선 자체는 피해갔다. 지금 존재하는 유일한 안전장치는, AI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기업이 스스로 거는 제한뿐이다. 


출처

  • Order Granting Motion for Preliminary Injunction, Anthropic PBC v. U.S. Department of War, No. 3:26-cv-01996-RFL (N.D. Cal. Mar. 26, 2026) — 결정문 전문, 캘리포니아 연방법원 제출, 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