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단순한 응대만 했어요.” 한 시중은행 콜센터에서 15년째 일하는 A씨는 처음 일하던 시기를 그렇게 기억한다. 대부분의 문의는 영업점 방문 안내로 마무리됐다.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청약을 해지해야 한다면, 신분증 들고 지점에 방문해야한다고 안내했는데, 이제는 고객님 본인 확인을 한 후 언제 청약 통장을 개설했는지 확인부터 합니다. 2019년 이후에 개설했으면 이분이 인터넷 뱅킹에 가입돼 있는지, 인증서로 로그인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 본인 명의 휴대폰을 사용하는지, 화상 인증이 가능한지를 봅니다. 다 가능하면 비대면에서 해지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9년이면 고객 문의의 80%를 AI가 사람 없이 처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기업 앤트로픽은 자사 AI 모델의 사용 내역을 직업별로 분류했는데, ‘고객 상담 직군’이 프로그래머 다음으로 많이 등장했다. 한국고용정보원도 고객 상담 직종을 AI 대체 고위험군으로 분류했다.

콜센터 업무가 AI로 대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업계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전망의 전제는 하나다. 콜센터 업무가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는 2026년 보고서에서 이 같은 전망이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줄 뿐, 실제 노동시장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비대면 끝에 콜센터가 있다

은행의 모바일 앱에 들어가면 예적금, 대출, 퇴직연금, 펀드, 청약, 외환, 공과금 등 메뉴만 수십 개에 이른다. 이전에는 반드시 창구에 가야 처리할 수 있던 업무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옮겨 갔다. 앱이 활성화될수록 앱 전용 상품이나 이벤트도 늘어나고, 정부 정책에 따라 ISA 계좌, 청년적금 같은 새로운 상품도 계속 생긴다.

이 변화 속에서 은행 오프라인 지점은 줄어들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 점포 수는 2015년 7,281개에서 2025년 5,514개가 됐다. 10년 사이 1,767개가 사라졌다.

금융은 복잡해지는데 대면으로 안내해 줄 지점은 줄어들고 있다. 앱에서 해결하지 못한 고객은 전화를 건다. 가까운 지점이 사라져 대면으로 문의할 곳이 없어진 사람도 콜센터로 전화한다. 비대면 채널의 끝에 콜센터가 있다.

콜센터는 오래전부터 ‘단순 안내’ 업무로 분류되어 외주화된 산업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국내 19개 은행 콜센터 상담 인력의 88%가 간접고용이다.

김정훈 코넬대학교 노사관계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자는 “한국 대기업은 상담 노동처럼 ‘코스트(비용)’로 분류되는 노동은 외주화해 온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외주화하면서 콜센터 상담원들의 간접고용,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는 그대로인데, 은행이 지점을 줄이고 비대면을 늘리면서 콜센터로 밀려오는 일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현재 금융권 콜센터 상담원이 하는 일은 비대면 은행 업무와 다를 바 없다.

은행 업무에 단순한 콜은 없다

잔액 확인이나 이체 같은 단순한 문의는 이제 앱 내 채팅이나 AI 콜봇이 처리한다. 사람에게 연결되는 전화는 거기서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다. 앱이나 웹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객이 전화를 건다.

앱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고객에게는 조작법부터 안내해야 한다. 디지털에 익숙할 것이라 여겨지는 젊은 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김현주 지부장은 “의외로 젊은 분들도 상담사 연결을 원한다”고 말한다. 거치 기간, OTP 같은 금융 용어를 사회 초년생들이 잘 몰라서, 앱에서 메뉴 파악이나 검색 단계부터 진행 자체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전화를 건 고객이 자기 문제를 정확히 설명하는 경우도 드물다. “뭔가 안 되는데요”로 시작하는 전화가 적지 않다. 10년 차 은행 콜센터 상담원 B씨는 “고객들이 전화를 하면 뭐가 안 되는지 정확하게 말씀을 안 하세요”라고 했다. “본인도 어떻게 자기 용건을 말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콜센터 상담원은 고객이 쓰는 애매한 표현, 말의 순서, 주저하는 지점을 파악하며 역으로 고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B씨가 최근 겪은 사례 중 하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고객이 “인증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당사자조차 자신에게 어떤 인증서가 필요한지 모르는 상황이었다(은행 업무에 필요한 인증서는 크게 금융인증서와 공동인증서로 나눌 수 있지만, 사용자와 용도에 따라 세분화된다). “발급 가능한 인증서들을 설명해도 그중에 뭐가 필요한지 모른다고 답하니, 어떤 목적으로 인증서가 필요한지 고객과 스무고개 하면서 알아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객의 진짜 문의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콜센터에서의 오랜 경력 덕분이다. A씨는 “AI는 입력된 그 값만 답해요. 근데 고객들은 그 값이 나올 수 있도록 질문을 할 수가 없어요. 자기도 뭘 묻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한테 전화를 하는 거”라고 했다.

비대면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업무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청약 통장해지도 온라인으로 가능해졌어요. 이전에는 청약통장 신청까지만 온라인으로 되고 해지는 반드시 지점에 가야 했는데, 바뀐 거죠. 이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차나 기준까지 다 물어봐요. 단순 안내가 아닌 거예요, 정말.”

A씨와 B씨는 입을 모아 비대면 업무가 차원이 다르게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한번 나온 상품은 판매를 중지하더라도 기존 고객이 해지하지 않는 이상 관련 업무는 계속된다. 합병 이전 은행에서 개설한 청약통장 문의가 지금도 들어오는 식이다. 과거의 상품과 현재의 상품이 계속 누적된다.

은행 콜센터의 신입 교육 기간은 대부분 한달인데, 10명 중 적어도 5명이 중도에 그만둔다. 반나절 만에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교육 받다 도망가시는 분이 많아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내용이 방대한 데다가 금융 업무 자체가 전문적인데, 이 정도 (최저임금) 받으면서 왜 이 고생을 하냐는 거죠. 한달 신입 교육만으로도 상담하기 쉽지 않고, 교육이 끝나고도 계속 공부해야 해요.”

이 과정을 견딘 상담원들에게는 매뉴얼에 없는 경험치가 쌓였다.

A씨는 “옛날에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콜이 늘었는데, 요즘은 이슈가 없는데도 콜이 많다”고 했다. 단순한 문의를 AI가 도맡은 뒤에도, 사람에게 오는 전화는 줄지 않았다. 상담원과 통화하는 것 자체가 귀해지면서, 한 번 연결된 고객은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본다. 콜 한 건의 난이도는 높아지고, 상담 시간은 길어지고 있다.

정책과 은행의 빈틈을 메우는 사람들

정부가 대출 규제를 바꾸거나 지원 정책을 발표하면, 다음 날부터 고객 문의가 쏟아진다. 특히, 대출 조건이 달라지는 부동산 규제 정책이 새로 나오면 금융권 콜센터 상담원들은 잠시 쉴 틈도 없다.

정책에 따라 은행 금융 상품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교육 자료가 은행에서 콜센터 용역사를 거쳐 내려오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케이스를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간극을 콜센터 상담사들이 메워오고 있다.

AI 시스템에 해당 변경 사항을 반영하는 데는 통상 2주가 걸린다. 한 은행이 내부 직원용으로 도입한 AI 챗봇도 상담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13년 차 은행 콜센터 상담원 C씨는 “복잡한 케이스는 (챗봇에) 물어볼 수가 없다. 그냥 (교육 자료) 문서가 때려 박혀져 있을 뿐이라 검색을 빨리하는 수준”이라 말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외 상황에도 챗봇은 답하지 못한다. A씨는 “우리의 노하우가 챗봇보다 대단한 거”라고 했다.

은행 창구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다가 답을 모르면 어디에 물어볼까. 주어진 자료와 주변 동료, 상사에게 묻다가 답을 얻지 못하면 콜센터를 찾는다고 한다. 고객이 앞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문의하는데 어떻게 할지” 콜센터에 물어본다는 것이다. 분야는 예적금, 대출, 외환, 전자금융, 퇴직연금, 펀드, 신탁 등을 가리지 않는다.

은행 정규직이 처리하지 못하는 문의를 용역사 소속 상담원이 전화로 안내하는 상황도 있다. 10년 차 은행 콜센터 상담원 D씨는 “(은행 지점 직원들은) 억대 연봉 받으면서, 최저임금 받는 우리한테 ‘네가 맞춰봐’라는 식으로 물어본다”고 했다.

이렇게 콜센터에 들어오는 질문 중 단순한 건 없다. D씨의 표현에 따르면 “하나하나 장문의 시험 문제”다. 예를 들어 만기가 돌아오는 예금을 매도한 다음에 퇴직연금의 다른 상품을 매수하려고 하는데, 언제 매도가 완료되고 언제 매수가 완료되는지, 그리고 예금 만기 전에 예약을 걸어 놓을 수 있는지를 묻는 경우도 있다.

은행 콜센터는 비대면 영업점

기자가 만나본 금융권 콜센터 상담원들은 AI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AI가 있는 건 좋다. 상담사를 도와주는 보조 역할로 있는 거는 편리하고 좋다. 근데 우리를 대체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이유만으로 AI를 넣는 건 안 된다.”

국민은행 경영연구소가 2025년 10월에 낸 보고서도 같은 방향의 결론을 내린다. 보고서는 AI 상담이 “예측 가능한 요청에는 뛰어나지만 고객의 감정과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은 떨어진다”고 적으며, 복잡한 상호작용은 인간이 맡는 협업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지었다.

은행 업무의 현장을 모르는 채 도입된 AI가 오히려 상담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고객은 콜센터 상담원과 연결되기 전에 AI 콜봇을 먼저 거쳐야 한다. B씨에 따르면 “원래 상담사가 바로 받았으면 짧게 끝날 수 있는 콜”도 AI 콜봇을 거치면서 길어진다. 상담원에게 전화가 연결됐을 때 고객은 이미 10~20분을 기다린 상태다. “한 마디 들으려고 10분 20분 수화기 들고 있는 거”라고 B씨는 말했다. AI 콜봇에서 해결되지 않은 짜증은 상담원에게 쏟아진다.

소비자도 이를 감지하고 있다. 국민은행 경영연구소가 2026년 4월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컨설팅 회사(PwC)의 설문조사 결과 AI 기술이 인간 전문가를 대체할 가능성이 낮은 영역으로 ‘금융 거래 실행’과 ‘주식 추천 및 기타 투자 자문’이 꼽혔다. 리스크가 크고 개인적인 영역일수록 고객은 AI보다 사람을 더 신뢰한다고 보고서는 정리했다.

B씨에게는 정정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저희는 상담원이 아니라 상담사에요.” 옆에서 A씨가 설명을 보탰다. “(콜센터는) 비대면 영업점이라고 생각하고 콜센터 상담원들이 저평가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날 만난 C씨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 콜센터 상담원들은) 단순 안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객들의 자산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B씨는 “이 콜센터의 노동 가치 평가가, 최초 콜센터가 생겼을 때의 평가에서 바뀌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했다. “왜 예전 콜센터에 대한 평가를 지금까지 그대로 가지고 와서 콜센터 상담원들은 지식이 얕다고 저평가하는지 모르겠다.”

은행 콜센터 업무가 ‘비대면 영업점’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상담사를 대체하겠다며 도입하려는 콜센터 AI 기술은 어디까지 왔고 어떻게 도입되고 있을까.

은행 콜센터 AI, ‘협업’과 ‘비용 절감’ 사이
비대면 거래 확대와 영업점 축소가 이어지면서, 은행 콜센터는 사실상 ‘비대면 영업점’의 역할을 맡게 됐다. 금융당국 역시 콜센터 업무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상황이다. 결국 이 업무를 AI와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는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