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프레임 리서치’는 AI·자동화·노동·거버넌스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주요 연구 자료를 선별·해설하는 코너입니다. 첫 번째 소개하는 자료는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과 데이비드 오터의 「친노동 AI 구축하기(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2026년 2월) 논문입니다.

📑 아세모글루·존슨·오터 (2026.02).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빨리 대체할 것인가. 이 우려 섞인 질문이 한국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AI의 기술력 앞에서 앞으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걱정만 커져간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그리고 데이비드 오터가 2026년 2월 발표한 「친노동 AI 구축하기」는 이 흐름 속에서 “기술의 설계 단계에서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하는 논문이다.

세 저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AI를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의 목적으로만 개발 및 도입하면 노동자의 전문지식은 상품화되고, 불평등은 심화되며, 결국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치른다. 그래서 이들은 “AI를 도입할 것인가”라는 질문 대신 “어떤 AI를 설계하고 어떤 방식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 기준을 ‘친노동 AI(Pro-Worker AI)’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술력이 아니라 ‘의도’가 문제다

논문에는 프랑스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전기 기술자 보조 도구(EA)’와 아마존의 배달 플랫폼 ‘플렉스(Flex)’가 등장한다. 두 도구 모두 현장 노동자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실시간 지시와 피드백을 받는 구조다. 기술 스택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으나, 결정적인 차이는 ‘설계 의도’에 있다.

슈나이더 EA는 기술자가 하드웨어 사진을 업로드하면 AI가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수리 절차를 제안하고, 유지보수 보고서의 초안을 자동으로 써준다. 작업 시간은 절반으로 줄지만, 최종 판단은 기술자가 한다. 숙련 기술자만 가능했던 복잡한 작업을 신입도 수행할 수 있게 되어, 전문지식이 확장된다.

아마존 플렉스는 정반대다. 같은 실시간 모바일 기술이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된다. 중앙 시스템이 배송기사를 프리랜서로 모집하고, 감독하고, 계정 비활성화로 해고한다. 이런 식의 AI 감시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진다. 다국적 콜센터 기업 텔레퍼포먼스는 콜롬비아 사업장에서 재택 상담사의 음성과 화면을 AI로 실시간 분석하고,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는 노동자들이 해고가 두려워 화장실 가는 것조차 포기한다.

같은 기술, 다른 의도, 정반대의 결과. 저자들이 ‘기술은 중립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국에도 필요한 정책 제안 셋

기술이 중립이 아니라면, 방향을 잡아주는 건 정책의 몫이다. 저자들은 인재와 자본을 친노동적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9가지 공공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그중 한국에도 긴급한 것 셋을 꼽는다.

①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도화할 것. AI 도입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 단체가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특히 일터 감시용 AI나 충분한 검증 없이 도입되는 AI를 제한할 수 있는 보호 프레임워크가 절실하다. 한국에는 이에 관한 법적 공백이 크다.

② 세법의 투자 유인 구조를 바꿀 것. 지금의 세법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투자할 때 세 부담이 가볍다. 기업은 사람을 더 뽑을 이유보다 사람을 대체할 이유를 더 많이 갖는다. 고용·교육 투자와 장비·소프트웨어 투자 사이의 세금 불균형을  해소해 친노동적 기술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③ 노동자의 ‘전문지식에 대한 소유권’을 확립할 것. 작가·언론인·예술가의 작품뿐 아니라, 현장 노동자가 업무 중 생산하는 행위 데이터까지 이미 AI 훈련에 무단으로 쓰이고 있다. 훈련이 완료된 순간, 데이터를 제공한 바로 그 노동자가 가장 먼저 대체될 수 있다. 자신의 역량과 창작물에 대한 통제권·소유권을 보장하는 법적 체계가 필요하다.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는가?” AI 도입이 가속화되는 지금, 그 질문을 먼저 던지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안진이 연구위원이 논문 전체 내용을 아래에 자세히 정리했다. 이 논문을 출발점 삼아, 한국의 노동 현장에서 친노동 AI의 사례 또는 그 대척점에 있는 사례를 찾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